‘행복배틀’, 행복해 보이는 것과 행복한 것 사이

[엔터미디어=정덕현] 저들은 무엇 때문에 저토록 행복해 보이려 안간힘을 쓰는 걸까. ENA 수목드라마 <행복배틀>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에 산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부의 상징처럼 보이는 그 아파트에 살고 있고, 실제로도 부자다. 송정아(진서연)는 한 회사의 대표로 엄마들 커뮤니티에서도 대표이고, 김나영(차예련)은 전업주부지만 잘 나가는 남편이 있다. 오유진(박효주)도 전업주부지만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인플루언서다.

이들은 SNS를 통해 자신들의 행복을 전시하고 심지어 ‘배틀’한다. 얼마나 남편이 돈을 잘 벌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상한지를 매일 일상을 찍어 올려 증명하려 하고,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앞서는 슈퍼맘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타인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것이 저들이 외부에 보여주는 행복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이들은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 보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실체 속으로 은행 직원으로 살아오던 장미호(이엘)가 들어가게 된다. 어려서 부모의 재결합으로 자매 관계가 되었던 오유진(박효주)이 그 아파트에서 살해되고, 그 남편마저 사경을 헤매게 되면서, 어쩌다 ‘진짜 이모’가 된 그가 오유진의 아이들을 당분간 돌봐주게 되면서다. 그 아파트에서 지내며 아이들을 돌보면서, 장미호는 조금씩 이 행복해 보이려 애쓰는 저들의 삶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오유진이 죽었지만 그 죽음을 애도하는 척 하는 엄마들의 위선이 눈에 보이고, 친언니, 동생처럼 굴었던 송정아나 김나영도 어딘가 오유진의 죽음과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오유진이 죽기 전 송정아와 김나영의 치부를 갖고 그들을 협박했던 사실이 있고, 이들은 그래서 오유진이 사망한 후에도 그의 USB를 찾으려 애쓴다.

김나영 역시 자상한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SNS를 통해 보이곤 했지만, 실상 그 남편인 이태호(김영훈)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불륜관계였다. 아내 김나영이 의부증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지만, 이태호의 가스라이팅이 있었던 것. 한편 송정아와 그의 연하 남편 정수빈(이제연)의 관계도 겉보기와 달리 주도권을 쥔 송정아에 의해 정수빈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인다. 정수빈은 무언가 아내에게 숨기는 것이 있어 보이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행복해 보이는 것과 진짜 행복한 것. 최근 2%(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넘어서며 상승세를 타고 있는 <행복배틀>은 그 차이를 끄집어내 폭로한다.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에 사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진짜 행복하지는 않다. 그들이 진짜 행복하다면 굳이 더 행복하다며 ‘배틀’하듯 자신의 행복을 강박적으로 전시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건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에 사는 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행복을 두고까지 경쟁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일 뿐, 어쩌면 이건 우리 모두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장미호의 고등학교 시절, 오유진과 친자매처럼 지내며 행복해 보였던 그 삶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 하나에 무너지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 또한 그걸 보여준다.

교회를 다니며, 단란한 가족의 모형처럼 보였던 장미호의 가족은 작은 불씨가 큰 불길로 번져나가면서 갈등이 갈등을 만들었고 결국 파탄 지경에 이른다. 이혼 절차는 밟지 않은 채 헤어진 가족은 그 후로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장미호는 은행에서 일하고, 오유진은 결혼해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에서 살며, 장미호의 친모인 임강숙(문희경)은 요양원에서 지낸다. 오유진의 친부는 음독을 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상태가 된 채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다.

<행복배틀>이라는 드라마가 갖고 있는 힘은 저들의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의 진면목을 끄집어내 폭로하는 데서 나온다. 강남의 바벨탑 같이 치솟은 건물을 지날 때마다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막연히 상상하지만, 그건 실제와는 사뭇 다를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꺼내놓는다. 이 드라마가 저격하는 건 그래서 ‘행복 전시 사회’ 같은 SNS로 대변되는 행복조차 경쟁하는 사회의 실체다. 그걸 보는 맛이 의외로 쏠쏠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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