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사기’, 사기가 법보다 이롭게 된 현실에 대한 역설

[엔터미디어=정덕현] 누군가의 핸드폰을 훔쳤다? 그것만 보면 절도죄다. 하지만 그 핸드폰 주인은 그걸로 누군가를 도촬하고, 그 영상을 하드업체에 상습적으로 팔아넘기는 그런 인물이다. 훔친 행위는 절도지만, 그건 또한 도촬은 물론이고 영상 불법 판매 등등의 범법 행위를 막은 것이기도 하다. 법을 지켜야 한다고 그 핸드폰 주인을 그냥 놔두는 게 옳은 일일까, 이런 식으로라도 그 행위를 막아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게 옳은 일일까.

tvN 월화드라마 <이로운 사기>에 등장하는 이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이로움(천우희)은 도촬하는 이로부터 핸드폰을 훔쳤고, 그 안에 불법 영상들이 가득한 걸 확인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변호사 한무영(김동욱)은 이 모든 문제들을 법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로움이 훔친 핸드폰을 돌려줘야 하고, 그 상습 범법자는 법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로움은 생각이 다르다. 이미 그 핸드폰에 깔아놓은 맬웨어(악성코드)로 그의 집에 있을 컴퓨터 하드에 있는 영상들까지 모조리 찾아내 지워버리고 이 사실을 그의 가족에게 알리거나, 그가 변절해 동업자들을 경찰에 꽂으려 한다고 알려줘 그들로부터 응징을 받게 할 수도 있으며, 이걸로 번 돈을 송금하라고 협박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게 그 범법자를 제대로 응징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인 한무영은 그게 전부 불법이라 하지만, 이로움은 그 법을 믿지 못한다. “여자애들 협박한 돈으로 배달 음식 시켜 먹던 놈 집행유예 준 그 법? 그런 게 당신 무기인가?” 그러자 한무영이 이로움에게 콕 집어 말한다. “로움씨 무기는 폭력이랑 범법이란 소리로 들리네요?” 한무영과 이로움의 생각 차가 극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을 친구에게 입양했다가 물에 빠져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도 한무영과 이로움은 생각이 다르다. 수영도 못하는데 수심 깊은 곳에 빠져 사망한 아들 앞에 양부모는 무려 15개의 생명보험을 들어 놓았다. 누가 봐도 보험사기를 의심케 하는 사건이다. 이미 사고사로 종결되고 보험금도 지급됐지만, 친모는 합의를 거부한 채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무영은 어떻게든 친모를 돕고 싶지만 합의금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고 아들 죽음의 억울함을 푸는 게 목적인 친모는 더 이상의 변호를 거부한다.

여기서도 법은 무력하다. 누가 봐도 보험사기를 의심케 하는 사건이지만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처리되고 양부모는 거액의 보험금을 탔다. 결국 친모는 원통하고 애통한 마음에 자살까지 결심하지만 가까스로 한무영이 이를 막고, 어떻게든 법으로 도움을 주려 하던 한무영도 피해자의 상황에 과몰입하다가 쓰러진다.

법이 정의라고 믿는 한무영과 복수가 진정한 정의라 믿는 이로움. 그들이 그렇게 된 데는 저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충격적인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한무영의 엄마는 무신경하고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상처를 받다 결국 도망치게 됐고,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무영은 엄마에게 걱정 말고 가라고 말한 바 있다. 타인의 상처에 그가 ‘과공감 증후군’을 갖게 된 이유다. 한편 이로움의 부모는 그의 눈앞에서 살해됐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부모를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법을 믿지 않는 이유다.

법을 정의라 믿는 한무영은 어떻게든 피해자들을 돕고 싶지만 그가 가진 무기인 법은 무력해보인다. 하지만 복수야말로 진정한 정의라 믿고 그래서 부모를 죽인 자들을 응징하려는 이로움은 자신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기든 뭐든 다 감행하는 마술 같은 일들을 보여준다. “마술 좋아해요?” 한무영과 이로움의 생각 차는 마술에 대한 그들의 다른 생각을 통해 전해진다. 결국 마술은 속이는 것이라며 좋아하지 않는다는 한무영에게 이로움은 그가 마술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자신이 그 마술을 보여줄 거라며.

보험사기를 친 부부에게 아동 심리 컨설턴트로 위장해 접근하고 그들의 욕망을 건드려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내는 사기를 친 이로움 앞에 한무영은 마치 마술을 본 것처럼 경악해한다. 과연 이렇게 정의에 대한 생각이 다른 이로움과 한무영은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 변화해갈 수 있을까. 그건 이들이 각각 겪은 트라우마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법과 진정한 처벌이 어떤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로움과 한무영의 방식 중 먼저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이로움의 사기다. 그건 아무래도 우리네 법 정의 현실이 진정한 정의 구현과는 거리가 멀다는 우리의 인식이 깔려 있어서일 게다. 최근 들어 ‘사적 정의’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 하지만 <이로운 사기>는 그 과정에서 지켜야할 법에 대한 가치 또한 한무영을 통해 전해줄 것이라 예상된다. 그렇게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한 둘이 서로 섞여가는 모습이 못내 기대되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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