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사기’,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천우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진흙탕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는 게 맞아요? 같이 들어가는 게 맞아요? 막는다, 같이 들어가 서 논다. 하나만 고르면?” 고요한(윤박)이 어머니인 신서라(정애리)의 집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만난 정신과 전문의 모재인(박소진)의 차를 같이 타고 나오며 불쑥 묻는다. 고요한이 갑자기 ‘진흙탕’ 운운하는 건, 한무영(김동욱) 변호사가 했던 이야기 때문이다. 그는 고요한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요한씨가 로움씨를 진흙탕 근처에도 못 가게 막는 사람이라면 난 로움씨가 진흙탕에 빠졌을 때 같이 싸우는 사람일 겁니다.”

이건 아마도 tvN 월화드라마 <이로운 사기>가 그리려는 복수극의 특별함이고, 나아가 세상의 정의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등식으로 간단히 나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일 게다. ‘진흙탕’에 빠진 이들. 적목이라는 재단이 모아 범죄에 이용했던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가난한 아이들이 그들이다. 이로움(천우희)을 포함한 그들은 적목의 폭력 앞에 자신들의 능력을 범죄에 쓸 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그들은 적목에게 당한 피해자들이면서 동시에 적목에 의해 종용된 범죄의 가해자들이었다.

적목의 씨를 말리려는 이로움의 복수 앞에서 고요한과 한무영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두 사람이었다. 고요한은 이로움이 다시 범죄의 세계인 그 진흙탕으로 들어가는 걸 애써 막으려고 했지만, 한무영은 달랐다. 그 진흙탕 속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들을 진흙탕에 몰아넣은 적목과 싸우려 했다.

그러나 한무영은 입장이 다르고 방식이 다르지만, 고요한 역시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보호관찰관으로서 그토록 자신이 담당한 이들이나 이로움에게 집착한 데는 개인적으로 아픈 사연이 있었다.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윤식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다 죽음을 맞이한 사건이 그것이었다. 그 일을 겪은 후 고요한은 더 이상 윤식이 같은 비극이 없기를 바란 것이고 그래서 그토록 보호관찰관 일에 집착한 거였다.

고요한과 입장이 다른 건 적목재단에서 이로움 같은 아이들을 선별할 때 자문을 해줬던 그의 어머니 신서라였다. 신서라는 그런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 결국 범죄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고 선을 긋는 인물이었다. 고요한은 신서라의 그런 생각이 끔찍했다. 그런 생각이 바로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윤식이 같은 비극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요한은 한무영으로부터 이로움과 그 무리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가 바로 적목 때문이고, 거기에 신서라도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마음이 흔들린다. 진흙탕에 빠진 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도 한무영처럼 그 속에 뛰어들어 함께 싸워야 할까 고민한다. 그래서 모재인에게 그렇게 불쑥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진흙탕에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게 옳은 길인가 아니면 같이 들어가는 게 맞는 일인가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생겨나는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들 이면에 존재하는 적목 같은 시스템이 있다는 것. 그것은 <이로운 사기>가 그려내는 정의의 문제가 단순히 벌어진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등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걸 말해준다. 즉 이로움과 그 무리들에 의해 한무영의 집은 풍비박산 나는 비극을 겪었지만 그래서 가해자인 이로움과 그 무리들에게 한무영이 복수하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일까. 아니다. 이로움 역시 적목의 폭력 앞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게 된 것이니 그 역시 피해자다. 가해자이자 피해자.

그래서 <이로운 사기>는 약자들을 경쟁시키고 싸우게 만들어 그 동력으로 굴러가는 권력과 폭력의 시스템에 대한 대결의식을 드러낸다. 이로움과 한무영은 두 사람만의 관계로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지만, 한무영은 자신이 겪은 비극이 이로움과 그 무리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다시 이로움 앞에 나타나 손을 내민다. 드러난 피해와 가해의 무거움만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 진흙탕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진짜 가해자를 찾는 걸 이들은 해나갈 작정이다.

다시 맨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가서, 고요한이 모재인에게 ‘진흙탕’에서의 선택을 묻는 질문에 모재인이 농담처럼 던진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해진다. 한무영을 심리상담해주는 정신과전문의인 모재인은 그에게 깊이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물로 신서라처럼 기계적으로 선을 긋는 인물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뭐 어떤 진흙탕인데요? 보령 머드 뭐 이런 거면 친해지고...” 그 말은 진흙탕에 빠지냐 아니냐(범죄에 빠지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게 그 진흙탕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가라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이다.

자기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의 모든 진실을 알고 나서도 한무영이 홀로 남겨진 이로움을 찾아와 손을 내밀며 “늦어서 미안해요”라고 하는 말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그건 자신을 뒤흔드는 사적인 차원의 복수심을 넘어서 진짜 정의를 향해 내미는 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무영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그가 앓고 있다는 과공감 증후군이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가 엿보인다. 어렵지만 결국 공감을 통해서만이 가해자의 겉면이 아닌 그 이면에 놓인 진짜 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이로운 사기>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